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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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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꼬막, 새꼬막 맛, 모양 차이점 : 꼬막 까는 법 꼬막 이름 유래1798년 책 재물보에 '고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지역사람들은 꼬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단어꼬막은 조개 중에 작다는 의미로 접두어 '꼬' 는 작은 사물을 지칭하고 '막'은 오두막, 움막처럼 작은 공간을 의미로 기와지붕과 흡사한 껍질이 작은 기와집에 사는 조개라는 뜻일 수도 .. (수요미식회 패널 추측설..)   참꼬막, 새꼬막 차이점 ★ 모양의 차이 참꼬막 새꼬막은 같은 돌조개과에 속하는데 참꼬막은 껍질이 두껍고 나이테가 있다. 여수만에서 채취되는 꼬막은 대부분 자연산 참꼬막이다. 참꼬막은 양식이 안되고 갯벌에서 3~5년은 자라야 채취가 된다.   ★ 맛의 차이점 맛은 참꼬막은 바다향이 진하고 살짝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고 살이 부드럽고 짜다. 새꼬막보다 헤모글로빈 성분이 더 많아 ..
카야 토스트 탄생 이야기 싱가포르의 대표 간식으로 카야 토스트가 있다. 한쪽에는 버터가 한쪽에는 카야쨈을 발라서 만든 토스트로 아침 식사로 먹는 대표음식이다.  이 카야 토스트는 중국 하이난 출신의 화교가 영국 선박에서 일하던 중 코코넛밀크로 만든 카야잼을 빵에 발라 먹으면서 개발된 음식이다.   지금까지도 싱가포르 아침 식사로 많이 사랑받고 있는 카야 토스트이다.
전쟁이 낳은 음식들.. (밀면, 돼지국밥, 부대찌개 등등) 고춧가루 음식을 만들때 매운맛을 내거나 김치를 만들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고춧가루는 즉 고추는 조선시대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이 고추가 독성물질로 여겨져서 향후 200년 동안은 무기 비몽포, 찬혈비사신무 등 화학무기로 쓰였다.   19세기 초반부터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등의 음식이 탄생했다.  한국전쟁이 낳은 음식들 밀면한국전쟁 전에 함경도도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서 함경도에 흔하던 메밀이 귀해지면서 당시 미군이 원조했던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음식이 밀면이다. 돼지국밥 또 다른 부산의 별미 돼지국밥이 있다. 사실 돼지국밥은 함경도 토속음식으로 한국전쟁때 실향민들이 내려와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당시 미군들이 버린 돼지뼈를 끓여 ..
달고나 사실 미국음식이다. 달고나 원조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사탕으로 네플릭스에서 달고나를 허니콤 (Honeycomb)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달고나의 원조가 되는 음식이 바로  미국의 허니콤이기 때문이다. 허니콤은 194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누가 제일면서 만들어 판매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K- 달고나 한국의 달고나도 만드는 방법의 차이는 거의 없고 맛도 거의 똑같은데 식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 허니콤 토피가 나오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설탕이 대량 보급되면서 달고나의 인기는 높아졌다. 이름의 유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대구 경북에서는 국자, 제주도에서는 떼기빵, 떼기, 띠까, 부산 경남에서는 쪽자, 똥과자..
충무김밥 원조집은 어디? 충무김밥 유래 통영에 가면 여기저기 김밥집이 즐비하다. 특히 통영의 별미 충무김밥이 유명한데 쫄깃한 오징어를 양념과 정성스럽게 버무리고 갓 지은 밥과 고소한 김으로 김밥을 만든 후 아삭한 섞박지까지 곁들여 먹는 김밥이다. 충무김밥의 유래는 해방 이후 충무항으로 고기잡이에 나가는 남편의 끼니로 준비한 김밥이 쉬지 않도록 밥과 속을 따로 담게 된 것에서 유래된 김밥이다. 충무김밥이 유명해진 이유 통영 충무김밥이 유명해진 이유 1981년 열린 여의도 대규모 축제 국풍 81 팔도 미락정에 참여 후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국풍81에서 소개된 음식이 많았으나 충무김밥은 특이했고 처음보는 비주얼에 맛까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원조 충무김밥집 지금은 고인이 된 어두이 할머니가 충무김밥을 출품했..
경주 법주 / 경주 교동 법주 유래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히 사랑했던 경주 법주가 있다. 1970년 외국 손님 접대용으로 만찬주가 필요했고 한 주류회사에 법주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경주 법주는 주세법상 명약주로 구분돼 특혜를 받았던 법주이다. 손님들에겐 한식과 함께 경주 법주를 대접했다. 법주의 여러가지 유래 = 승려들이 마시던 술 =왕과 귀족들이 제사에 사용하던 술 =신라 화랑들이 즐겨 마시던 술 그러나 정확한 법주의 유래는 알수 없다. 확실한 것은 경주 법주의 원조는 교동 법주이다. 경주 최씨 가문에서 전통적으로 빚던 술이 교동 법주였고 지금의 교동 법주가 원래는 경주 법주로 불려왔었다 . 그러다 1973년도에 박정희의 명령으로 유사 제품의 새로운 경주 법주가 나오게 되니 원래의 경주 법주는 경주 교동 법주로 개칭되었다.
최초의 커피는 어디서? 최초의 커피설 예멘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고 예멘의 건너편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에티오피아에 전설에는 갈디라는 목동이 염소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염소가 잠도 안 자고 날뛰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염소를 관찰하니 들판에서 붉은 열매를 먹고 나면 이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열매가 바로 커피였다. 아라비카 커피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예멘으로 이동하면서 커피나무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때 넘어간 커피가 아라비카 품종이다. 아라비카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커피 품종으로 향미와 산미가 좋고 카페인 함량이 적어 인기가 많다. 당시 유일한 커피나무 재배지였던 예멘을 오스만제국이 차지하면서 커피의 이름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카파, 아라비아에서는 ..
튀르키예 커피란? (터키 커피 문화) 1453년 오스만 제국(=튀르키예)이 콘트탄티노플 점령이후 예멘을 통해서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자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커피가 구하기 쉬워졌다. 술레이만 1세의 궁전에는 커피를 끓이는 하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부유층 역시 집에 커피방이 따로 관리되어 커피만 전담으로 끓이는 하인들이 따로 있었다. 지금의 바리스타와 같은 것이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 사람들은 최소 하루에 2잔의 커피를 마셨으며 20잔까지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1500년대부터 커피를 마셔온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다. 옛 오스만제국(현 튀르키예)의 커피 도구 오스만식 커피 전용 주전자가 있었는데 이것을 '체즈베'라고 불렀다. 오늘날 커피포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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