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 상식/역사이야기

최초의 스파이/ 최고의 스파이 간첩 활동은?

반응형

최초의 스파이 활동

기록상 최초의 스파이 간첩은 성경에 나와있다. 구약성서 민수기에 기록된 12명의 정탐꾼 이야기로 모세가 이집트(애굽)을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전 12명의 정탐꾼이 40일간 이 지역을 정탐하도록 보냈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최고의 간첩은 이중간첩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중간첩을 박쥐라고 부르는데 영국에서는 이중간첩을 두더지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땅굴 판 두더지처럼 조직 내부에 숨어 있다는 의미로 두더지라고 부른다. 

 

최고의 스파이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는 스타린의 007이라 불리는 세기의 스파이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표면적인 직업은 독일 신문사의 일본 주재 특파원으로 가장한 기자였다. 그러나 실제 정체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소련의 스파이였다. 조르게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정보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세기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세기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독소 전쟁 전 독일의 소련 침공을 개시일자, 규모 등을 정확하게 알아냈다. 또한 일본은 소련 침공 가능성 없고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로 향할 것이라는 것까지 알려줬다. 조르게의 첩보를 받은 스탈린은 극동 시베리아의 정예 병력을 모스크바 공방전에 투입가능했다. 

 

조르게는 어떻게 스파이가 된걸까? 

조르게의 할아버지는 공산주의를 만든 인물 칼 마르크스의 비서이자 동지였다. 그래서 재능을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6개 국어에 능통한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공산주의 유망주로 스파이로 발탁 된 후 세계 여러나라를 돌며 스스로 첩보망을 구축했다.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아돌프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아돌프

 

 

1933년 조르게는 일본으로 향했다. 독일의 신문기자로 위장해 일급기밀을 소련으로 빼돌렸다. 일본 입장에서는 조르게는 추축국으로 동맹을 맺은 독일의 신문기자였기에 일본 대사와 굉장히 친했고 일본 주재 독일대사의 정책고문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보낸 정보량만 3만 페이지가 넘었다고 한다.  

 

조르게의 위조 독일 기자증
조르게의 가짜 독일 기자증

 

조르게의 최후

조르게는 여성편력이 심했다. 마지막 애인이 일본 첩보원 공작원이었다. 점점 좁혀오는 감시망 속에 조르게가 타전한 마지막 첩보가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었다. 출발 시간까지 정확하게 알아냈다. 이 정보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그날 아침에 체포가 된다.  1941년 10월 체포 후 형무소에 수감된 조르게였다. 그러나 일본의 스파이 교환제의에도 모르쇠로 소련은 일관했고 1944년 11월 볼셰비키 혁명 기념일에 맞춰 교수형에 처해진다. 

 

 



반응형